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의기억연대 위안부 피해자 이용 논란 (문단 편집) === 이용수의 2차 기자회견과 이후 경과 === [youtube(jWQnzDNs3Go)] * 2020년 5월 25일 [[https://youtu.be/-oZaEsX7QPs|이용수 피해자의 2차 기자 회견이 2번의 장소 변경 끝에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렸다.]][* 영상은 1.25배-1.5배 속도로 보는 편이 잘 들린다.] * 이용수 할머니는 5월 25일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의연이 위안부 할머니들 팔아먹었다"면서 "윤미향(더불어민주당 당선인. 전 정의연 이사장)은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총선에 출마했다"고 비판했다. 윤 당선인이 자신을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한 것에 대해서는 "이용해 먹고 뻔뻔스럽게 눈물 흘리나. 그건 가짜 눈물"이라며 "용서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정대협(정의연 전신)은 모금이 끝나고 (위안부 할머니들이) 배고프다 하니까 '돈 없다'고 하는 단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정의연은) 30년 동안 할머니들을 이용해먹고 학생들까지 고생을 시켰다"면서 "(학생들) 돼지저금통에서 나오는 돈까지 챙겼다. 위안부 피해자를 도구로 사용했다. 제가 바보같이 이렇게 (이용당했나) 했나. (최근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했다. [[https://www.hankyung.com/politics/article/2020052535117|관련기사]] * 이 할머니는 "1차 기자회견 후 생각도 못 한 내용이 나왔다"면서 "(진실을 밝히는 것은) 검찰에서 할 일이다. 기자 여러분도 진실을 밝혀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저는 (정의연)용서할 수 없다"면서도 "(위안부 진상규명)활동을 중단하는 것은 아니다. 데모 방식을 바꾸겠다"고 했다. 윤 당선인이 기부금을 유용한 구체적인 사례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제가 모른다"고 했다. 대신 이 할머니는 최근 불거진 의혹은 검찰이 밝혀야 한다고 했다. 30년 만에 문제 제기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제가 무엇이든지 바른말을 하니까 (정의연) 사람들이 전부 감췄다. (한일위안부 합의금) 10억 엔이 왔을 때도 제가 알았으면 돌려보냈을 것"이라고 했다. * 이용수 할머니는 정신대와 위안부가 다른 것인데 이를 하나로 합쳐 정대협이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정신대는 일본에 강제 끌려간 노동자를 말하고, 위안부는 일본의 강제 성노예를 말한다. 그러면서 “비유하자면 만두 겉면은 정신대로 빚어놓고 속에는 위안부를 넣었다”라며 “일본에 ‘사죄해라’, ‘배상해라’ 주장해도 일본 사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지, 섞어서 이건 사죄 안 해도 된다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525/101202156/1|관련기사]] 그리고 윤미향에 대해서도 사리사욕을 채운 것을 포함해서 비판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11632544&isYeonhapFlash=Y&rc=N|#]][[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11632298&isYeonhapFlash=Y&rc=N|#]] * 그러나 이에 대해 연합뉴스가 보도한 팩트체크에서는, 위안부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본격 제기됐을 당시 국내에서 위안부와 정신대가 마치 '동의어'인 것처럼 혼용됐던 사실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공장에 취업해 일하게 되는 줄 알고 갔다가 위안부가 됐다'는 피해자 증언에 비춰보면 정신대와 위안부 피해자 간에 일부 접점도 있지만 '강제징용 피해'의 맥락에서 다뤄져온 정신대는 전쟁시기 일본군대에 의한 여성 인권유린이었던 위안부와는 다른 개념인데도 명칭이 혼용됐던 것이다. 1990년 초반까지 국내 언론 보도에서도 정신대와 위안부는 사실상 동의어로 취급됐다. *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장기간 연구해온 윤명숙 박사는 5월 25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가 먼저 알려졌고, 1970년대 한국에서 처음 소개됐을 당시부터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윤 박사는 "1977년 '의병문제연구소'가 발간한 '민족의 함성'이라는 제목의 책에 일본 언론인이 쓴 위안부 관련 서적을 요약해서 번역한 내용이 '여자정신대의 기록'이라는 제목의 챕터로 들어가 있다"며 "여기서 보듯 한국에 위안부 문제가 처음 소개됐을 때부터 '정신대'라는 명칭이 사용됐다"고 말했다. 정대협, 정신대문제연구소 등의 단체들이 실제로는 위안부 문제를 다루면서도 이름에 '정신대'를 넣은 데는 이와 같은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200525151400502?input=1195z|#]] * 결국 이용수 할머니의 지적은 애초에 국내 학계 및 시민사회에서 위안부와 정신대의 개념 구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개념 구분이 된 이후로도 단체(정대협) 명칭을 바꾸지 않은 점 등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그 타당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정대협이 정신대 문제 관련 단체임에도 위안부를 이용했다"는 이 할머니의 지적은 맥락상 정확치 않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정대협 명칭에 '정신대'라는 단어가 있긴 했지만 그것은 출범 당시 위안부와 정신대의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탓이며, 정대협은 출범 당시부터 시종 위안부 문제를 주로 다뤄왔기 때문이다. * 이용수 할머니(92)는 2020년 5월 25일 기자회견에서 “한일 학생들이 서로 친하게 왕래하면서 역사를 배워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 아베(총리)는 ‘한국이 거짓말만 한다’ 이렇게 나오니, 일본 학생들도 (진실을) 모르고 거짓말만 하는 한국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일본과 한국 학생들이 서로 왕래하고 친해지면 속에서 할말도 있고, 또 배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끝으로 “왜 이렇게 당해야 되느냐, 끝까지 이렇게 당하고 있는 제가 너무 부끄럽다”라며 “하늘나라에 가서 할머니들한테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다. 언니, 동생들.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으니 나를 용서해 달라’고 빌겠다”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00525/101203895/2|관련기사]] * 회견 마지막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력하게 당해야 했던 우리들의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그리고 미래 우리의 후손들이 가해자이거나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발언했다. * 일부 친여성향의 네티즌들은 해당 기자회견은 미래통합당 [[곽상도]] 의원이 기획하였으며 기자회견에도 참석했다는 [[가짜뉴스]]를 살포하는 추태를 부리기도 하였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534008|#]][*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대구에서 가질 무렵 곽상도 의원은 서울 여의도에 있었다. 곽상도 의원으로 오해받은 인물은 [[임대윤]] 씨로,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는 인물이다.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90|링크]]] *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문을 놓고 일각에서 '배후설'이 나오자 이 할머니 측은 기자회견 전날 밤 7~8명이 모여 회견문을 공동 작성하고 이 할머니가 최종 승인했다고 반박했다. [[https://news.v.daum.net/v/20200526182823827|#]] 어쨌든 이용수 할머니 본인이 직접 작성한 것은 아닌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결국 내용에는 할머니 본인의 의견이 반영이 되었고, 할머니 본인도 말했듯이 연세가 연세이신지라 일괄적인 문건 작성이 어려우셨기 때문에 내용 정리를 위해 외부의 도움을 받은 듯하다. 거기에 참여한 이용수 할머니의 수양딸은 더불어민주당원이라고 주장하지만 확인된 바 없고, 본인의 본명을 철저히 숨기면서 인터넷상으로는 여러 개의 가명을 쓰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일단 법적인 수양딸은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 무엇보다 할머니는 결국 이 회견문을 그대로 읽지 않고 본인의 의견을 회견에서 직접 육성으로 발언했다. 그 내용도 이 회견문과 다르지 않다. * 굿모닝충청은 곽모 씨로 알려진 수양딸이 SNS상에서는 다른 이름을 중복해 사용하고 있으며 정확한 신분은 본인이 실토하기 전에는 실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다고 보도했다. 또한, 베일을 눌러쓴 상태에서 여러 개의 가명을 앞세워 필요할 때마다 찔끔 보여주기식 언행을 선보이고 있고 이는 곽예남 할머니의 수양딸인 이민주와 극명히 대조되는 행보라고 지적했다. 이에 수양딸 본인은 자신은 그저 인터넷에서 쓰는 필명이 따로 있는 것뿐인데 이를 억측으로 몰아간다고 반박했다. 본인이 최근 페이스북에서 올린 “나는 수양딸로 불리지만 집 비번도 모르고, 10원짜리도 다툴 마음이 없다” “오래비가 곽상도였단다”는 등의 글로 일부에 억측에 대한 의견을 밝힌 적이 있는데, 먼저 첫 번째 발언은 자신이 이 논란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이 없다는 점을 토로한 것이고, 미래통합당 곽상도 의원을 지칭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충청일보 기사에도 나오는 원문을 보면 알겠지만 명확히 자신의 오빠가 곽상도라는 억측을 비꼬는 말이다.[* 그 원문에 붙은 태그부터가 #내가애먹인것보다_더큰욕을본듯_오늘횽아_뭔날인가?이다.] [[http://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232594|#]] *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기자회견 당시 회견문이 자기 의사와 다른 것이 현장에 있었다며 회견문이 현장에서 바뀌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본래대로라면 자회견을 앞두고 할머니는 서혁수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대표 등 2명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회견문이었어야 하나, 실제 현장에서 나온 회견문은 수양딸이 작성한 것이었다. 기자회견 이후 회견문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고 뒤늦게 크게 화를 냈다고.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11641422|#]] >{{{#!folding 이용수 여성인권운동가, 2차 기자회견 내용 (전문) [접기 • 펼치기] 제가 두 번째 기자회견을 한다. 누구를 원망하고, 또 잘못했다고 하는 건 제가 처음 기자회견을 할 때도 말했고, (이후에) 너무도 많이 생각지 못한 게 나왔다. 그것(윤미향 전 정대협 대표 관련 의혹)은 검찰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신대는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이다. 하지만 공장에 갔다온 할머니와 더럽고 듣기 싫은 위안부하고는 많이 다르다.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는 간 곳이 다 다르다. 잠깐 제가 갔는 데를 말씀드린다. 우리 나이로 하면 16살. 만으로 하면 14살이다. 저는 양력으로 돼 있다. 그때는 성(姓)을 갈지 않으면, 성을 갈아 야스하라 도시코라고 했다. 학교도 일본학교에서 글을 알았다. (일본군에 의해) 끌려가서도, 대만 가미가제 협공대 부대로 끌려가서도, 그 장교가 가타카나로 써줘서 대화를 했다. 이 군인이 하는 이야기도 피해자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 군인이 이름을 지어줬다. 야수하라고 지어주면서 “나도 도시꼬 같은 피해자 그후에 겪으면서 끌려가서 당한 것은 말로는 못한다”고 했다. 제가 쭉 30년동안 살면서,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증언을 했다. 그러면 제가 확실하고 바른말하고 이러니까(중략). 제가 1992년도 6월 25일날 신고를 할 적에 윤미향이라는 간사한테 (신고를)했다. 25일날 (신고를)하고, 29일날 모임이 있다고 해 갔다. 어느 교회입디다. 교회에 갔었는데 그날 따라 일본 어느 선생님이 정년 퇴직을 하고 돈을 1000엔인가 준다면서 100만원씩 나눠주더라. 그게 무슨 돈인지 몰랐다. 그때부터 (정대협이) 모금하는 걸 봤다. 왜 모금을 했는지 당시는 몰랐다. 따라다니면서 모금을 하는데. 보니까 농구선수들이 농구를 하는데 기다렸다. 그 농구선수가 돈을 들고 모금을 하더라. 그 돈을 (정대협이) 받아 오더라. 그게 왜 그런 줄은 몰랐지만, 부끄러웠다. 농구가 끝나면 돈 거둔 것을 받아 나왔다. 좀 늦었습니다. 늦게인데. (윤미향에게) “배가 고픈데 좀 맛있는 것 사달라”고 했다. (윤미향은) “돈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래도 그것이 그런가보다고 생각했다. 어딜 가도, 교회를 가도, 돈을 주면 그걸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그래도 모르고 쭉 30년을 (정대협이 하는 모금을)해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무엇인냐. 정신대대책협의회이다. 그러면 (정대협 구성을) 공장에 갔다온 할머니로 해야되는데. 빵으로 말하자면 (겉은) 공장 다녀온 할머니들은 밀가루 반죽해서 만두를 빚어놓고, 그 속은 위안부다. 그저께까지도 몰랐다. 어제 저녁 가만 생각하니, 이건 왜 무엇 때문에,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정대협)이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간 위안부를 정신대 할머니랑 합해서 쭉 이용해왔다. 저는 그것(정신대·위안부 모두에 대한 활동)도 다 하는줄 알았다. 어저께 제가 생각하니 이럴수가 있나. 30년동안 앉아가지고 애기하는 게 “사죄해라” “배상해라” 하는데 일본사람이 뭔지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하고. 이거는 뒤집어 섞어가 사죄하든 말든 놔두는 거 아니다. 이것은 왜 무엇 때문에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 모임’(정대협)이 위안부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간 이 위안부를 왜 자기들이 정신대 할머니를 이용해서 (정대협 입맛에 맞게)이용해나왔나. 저는 그것(정신대·위안부 모두에 대한 활동)도 당연한 줄 알았다. 어제 생각하니 이럴 수가 있나. 30년동안 앉아서 이야기 한 것이 “사죄해라” “배상해라” 하는데. 일본 사람이 뭔줄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한다. 이건 사죄하지말고,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니냐. 그 학생들까지 고생을 시켰다. 그 학생들 돼지저금통에서 나온 이 돈(모금액) 받아서. 어제 잠 못잔다. (정대협이) 정신대만 하지, 자기가 무슨 권리로 위안부 피해자를 모금의 대상으로 사용하나. 이것을 생각하니 자다 일어나서 울었다. 왜 내가 이렇게 바보같이 이용당하면서 말도 못했나 생각하니, 그래, 기자회견에는 이것을 반드시 밝혀야겠다. (정대협이) 사죄배상 오가는 걸 막지 않았느냐. 위안부하고 정신대하고 어떻게 같나. 위안부는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가 죽은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이걸(정대협의 정신대·위안부 구분없는 활동) 30년을 해왔다. 일본 사람들이 바보냐. 정신대대책위원회(정대협)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데, (정대협이 위안부 문제에)해당하지도 않는데. 일본이 왜 사죄하고 배상하겠느냐. (일본 측에서) 안 하는 이유를 나는 알았다. 이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팔아먹었다. 내가 왜 팔려야 합니까.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내 가족이) 아들 육형제에 딸 하나다. 우리 부모님은 불면 날아갈까 놓으면 놓칠까, 쌀 하나놓고 불려서, 엄마가 처음에는 감춰서 “수야 이리온나” 부엌에 가서 먹이고 했다. 이런 남의 집 귀한딸, 고명딸을 밤에 그것도 끌고 가서 대만·신주·가미가제부대를 가서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끌고 가서 전기고문과 갖은 칼 가지고 몸을 그려가지고 이렇게 죽여놨다. 이런데 그 군인이 보니까 그 방에 들어가라고 이렇게 머리를 그냥 질질질 끌고 가가지고 광에 큰거 문을 확 열디만은 확 밀었다. 또 이렇게 해가지고 발로, 그것은 돌뿌리보다 더 여문 군홧발이었다. 허리를 발길로 차서 엎어졌는데 너무너무 찢어 지도록 아프고 죽도록 아파서. 잘못한 거 없지만 그런 데도 살려달라고 했다. 이런 데도 머리카락 잡아뜯고 앉혀서 두 팔을, 한쪽팔을 테이블에 걸어놓고 (손목 가리키며) 여기 하나 감고 여기 하나 감고. 지금도 생각난다. 엄마라고 크게 불렀는데 이게 귀에서 나는지 머리에서 나는지, 어린 나이에서부터 지금까지 난다. 이거 왜 그런지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다.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25/2020052502964.html|#]] 참고 [[http://bgmlibrary.egloos.com/4452928|#]] }}} >{{{#!folding 이용수 여성인권운동가, 2차 기자회견 공개 문건 (전문) [접기 • 펼치기] ---- 저는 위안부였습니다. 그냥 위안부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대만 주둔 가미가제 특공대의 강제 동원 위안부 피해자였습니다. 해방 이후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했던 제 삶의 상처를 대중에게 공개했던 것이 1992년 6월 25일입니다. 차마 용기를 내기가 어려워 제 자신이 아니라 친구의 이야기인 것처럼 당시 정대협에 거짓으로 피해를 접수했었습니다. 이후 1992년 6월 29일 수요집회를 시작으로 당시의 참상과 피해, 그리고 인권유린을 고발하고, 우리 인류에게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른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문제 해결과 인권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서로 간 존재도 몰랐던 우리 피해 할머니들은 각자 겪은 참상과 인권유린을 이야기하며 부둥켜안고 눈물로 아픔을 함께 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이 30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투쟁을 통해 손가락질과 거짓 속에 부끄러웠던 이용수에서 오롯한 내 자신 이용수를 찾았습니다. 먼저 가신 피해자 언니들과 함께 이 문제를 저 이용수가 꼭 >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양국 정부의 무성의와 이리저리 얽힌 국제 관계 속에서 그 결실은 아직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번 기자회견과 입장문을 통해 지금까지 해 온 방식으로는 문제의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다는 말씀을 감히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리며, 앞으로 개선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제 기자회견 이후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제가 기대하거나 예상했었던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30년 동지로 믿었던 이들의 행태라고는 감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저는 당혹감과 배신감, 분노 등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 가지는 꼭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번 기자회견을 준비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일본의 사죄와 배상 및 진상의 공개, 그리고 그 동안 일궈온 투쟁의 성과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고백한 후, 참 힘든 세월을 지내왔습니다만 그럼에도 저는 이 길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부단히 다 잡아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께 부탁 아닌 부탁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현재 드러난 문제들은 우리 대한민국이 그동안 이뤄온 시민의식에 기반하여 교정되고 수정되어 갈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길에 ‘시민 주도 방식’, ‘30년 투쟁의 성과 계승’, ‘과정의 투명성 확보’ 3가지 원칙이 지켜지는 전제하에 향후 제가 생각하는 활동 방향을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 조속히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했던 많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안을 한일 양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책임성을 갖고 조속히 같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두 번째, 지난번 입장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구체적 교류 방안 및 양국 국민 간 공동행동 등 계획을 만들고 추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한일 양국을 비롯한 세계 청소년들이 전쟁으로 평화와 인권이 유린됐던 역사를 바탕으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을 함께 고민하고 체험할 수 있는 평화 인권 교육관 건립을 추진해 나갔으면 합니다. 네 번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적인 교육과 연구를 진행하고 실질적인 대안과 행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구를 새롭게 구성하여 조속히 피해 구제 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섯 번째, 앞서 말씀드린 것들이 소수 명망가나 외부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정대협과 정의연이 이뤄온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 국민의 힘으로 새로운 역량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섯 번째,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개방성과 투명성에 기반한 운영 체계를 갖추기 위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사업의 선정부터 운영 규정, 시민의 참여 방안, 과정의 공유와 결과의 검증까지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깊은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그동안 이 운동이 시민의 지지와 성원으로 성장해 온 만큼 시민의 목소리를 모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비롯한 활동가, 그리고 국민 여러분 모두가 현재 상황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 지 당혹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투쟁 과정의 문제들이 공론화되길 기대했던 것인데,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나면서 그 과정이 복잡해질 듯 합니다. 제겐 운동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던 여러분이 계십니다. 먼저 한 발을 내디뎌 새로운 길을 열어오신 분들께서 밝은 지혜로 시민과 함께 문제를 풀어낼 수 있도록 도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올해 93세입니다. 제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습니다. 어떤 이익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해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력하게 당해야 했던 우리들의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그리고 미래 우리의 후손들이 가해자이거나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모두가 걱정하고 있는 코로나19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이미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그 길을 닦아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느 길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은 함께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한 걸음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를 위한 모두의 한 걸음을 이제 국민이 함께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드림. [[https://news.imaeil.com/Society/2020052515220424816|#]] }}} * 6월 26일 오후 3시에 이용수 할머니와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이 대구의 한 카페에서 만남을 가졌다. 이용수 할머니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7월 중에 이나영 이사장과 같이 대구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겠다고 밝혔으며, 이나영 이사장은 할머니가 [[수요집회]]에도 계속 참석할 의지를 보였다고 밝혔다. 이 만남은 이용수 할머니가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고, 쉼터 소장의 죽음을 이용수 할머니가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11706953|#]] * 그러나 7월 1일, [[이용수(1928)|이용수 할머니]] 측에서 정의연이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이사장의 수요집회 발언을 접한 이 할머니는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 할머니의 수양딸 곽모씨는“마치 정의연에 그동안 제기된 의혹이나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고 어머니가 용서한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는 너무 황당해 하고 어이없어 하고 계신다”고 반박했다. 정의연 차원의 구체적 쇄신방안이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 할머니가 정의연에 힘을 실어주기로 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곽씨는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의혹들이 아직 남아 있고, 최소한 정의연 운동방식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공개적으로 논의할 태스크포스라도 생겨야 연대를 고려해 볼 수 있다는 게 어머니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337401?sid=102|#]] * 그 후 7월 3일, 대구의 모 찻집에서 이용수 할머니와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이 다시 만남을 가졌으며 이들 뿐만 아니라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 대표들 몇몇이 같이 참석했다. 정의연에 따르면, 이용수 할머니는 평화의 소녀상 세우기 운동과 수요 시위를 지지한다는 의견을 공유했다. 다만 현재의 시위 방식을 바꿔서 한일 청년 세대 교류와 역사 교육에 방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으며, 소녀상 건립에 더욱 힘을 쏟아 [[도쿄]] 한복판에까지 세워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8&aid=0004680509|#1]]''' 얼마 후 7월 9일엔 서울 종로구 대사관 앞의 소녀상에서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는 반아베반일 청년학생공동행동 회원들을 찾아가 그들을 격려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276345?sid=100|#2]] 소녀상 철거와 정의연 해체를 주장하는 보수단체의 집회를 보고 우려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11735846|#3]] * 그러나 8월 14일, 오전 충남 천안 국립망향의동산에서 열린 기림의 날 기념식이 끝나고 이용수 할머니는 '''수요집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거듭 밝히면서 이용수 할머니가 수요 시위를 지지한다고 했던 정의연의 발언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https://www.ytn.co.kr/_ln/0115_20200814162242857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